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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_18_02_어떤 선교사 엄마의 생각


우리의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고 애쓸 때,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자녀의 행복에 대해 마음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길을 가면서 심사숙고해야 할 새로운 상황은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마도 거기엔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을 것이며, 그 통과된 관문에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평화롭고도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며, 그것은 우리의 두려움과 염려, 죄책감, 자기 연민에 대한 격렬한 고통들을 가져갈 것이다.

나는 그 다리를 훨씬 더 일찍 건넜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그때가 되기도 전에, 첫 아이를 기숙사 학교로 보내야 하는 일로 염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신실성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며, 처음부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지 않았던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아마도 당신 역시 내가 가졌던 여러 질문들 중 하나에 직면할 것이다. 나를 방황케 했던...

1. 어떤 아이든지 학교에 다니기 위해 부모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2. 우리는 어떻게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이 내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인가?

3. 부모를 떠나 생활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우리 자녀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4. 우리 자녀가 외롭지 않을까?

5.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랑을 그곳에서 받게 될까?

6. 자녀와 헤어지는 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해가 지날수록 어떤 해답들은 서서히 내게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내가 그랬던 것보다 더 빨리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도록 격려해 줄 수 있기를 소원하며, 당신과 함께 그 해답들을 나누고자 한다.

1. 어떤 아이든지 학교에 가기 위해 부모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나님은 가족을 사랑과 상호지지의 한 단위로 만드셨다. 그리고 대개 이것은 가족이 함께 살고 있을 때 가장 훌륭하게 완성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아이가 어릴 때에 어머니의 훌륭한 양육을 경험한 후, 자신의 가족을 떠나 살도록 계획하신 것을 우리는 성경의 두가지 사례에서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이 바로 사무엘과 모세이다.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에서 열쇠가 되는 경건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어릴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의지하는 것을 배웠을 것이며, 어머니도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돌보신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께 바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특수한 귀를 가졌던 것 같다.(렘15:1) 만일 사무엘과 모세의 어머니가 하나님께 자기 자녀를 바치기 거부했다면 이스라엘은 어떤 슬픈 결과를 갖게 되었을까?

우리에게 호의적인 친한 친구들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자녀가 부모와 헤어지는 일이 하나님의 뜻일 수 없다고 우리 스스로를 설득하곤 한다. 그러나 위의 두 이야기는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녀가 부모와 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 자신도 하나님을 위해 자녀를 떠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지 않은가.

2. 우리는 어떻게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이 내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질문에 대해 알려고 씨름해 왔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 무지에서 오는 염려는 “그 때(then)”를 위한 올바를 행동과정에 대해 “지금(now)” 결정해야 한다고 느끼게 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그것을 알고 싶다고 느끼고 있는 때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만 할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옳은 길을 보여주신다는 믿음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이끄시고 예비하시는 방향을 향해서 우리의 의심나는 것들을 묻기도 하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기도하는 것과 우리의 선택방안에 대해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있어 재정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OMF 학교를 위한 공동기금을 마련해 주신 것처럼, 자녀교육을 위한 다른 개인 기금을 쉽게 우리에게 마련해 주실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재정을 지연시키시든지 아니면 그냥 허락하실 수도 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 자녀를 위해 어떤 길이 옳은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앉아 그분의 확실한 말씀과 뜻을 찾고자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시련들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첫째로, 우리의 개인적인 선호도와 합리성들은 우리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보다 중요하지 않으므로 제쳐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자녀의 삶을 위한 최선의 계획과, 자녀들이 그 계획을 통해 배우길 원하시는 교훈이 무엇이지도 혼자 알고 계시다.

둘째로, 다른 사람의 의견은 감히 우리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다른 이들이 생각하고 있거나 혹은 말로 표현하는 불안감들이 때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리울 수도 있다. 본국에서의 많은 교인들은 선교지에서 가족들이 헤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종종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결코 그 상황에 있어본 적이 없거나, 우리 학교를 본적도 없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이 어디에서 나왔든지, 아니면 어떻게 하나님이 누구를 인도하실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귀한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의 전 존재는 기꺼이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혜를 의지해야 한다. 순종할 준비를 위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과 지혜가 우리의 전존재를 주장하시도록 해야 한다. 내가 대만의 Hsinchu에 있는 Ching Hwa 대학 캠퍼스에 있는 소나무 그늘 밑 한 돌 위에 앉아있었을 때, 나의 마음은 우리 아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 자녀를 치푸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해야할 때가 왔다. 나는 우리 자녀를 보내는 것이 해가 되는 것인지, 옳은 것인지 망설이며, 질문하고, 의심하며, 방황하는 데 지쳐있었다. 마침내 나는 “하나님, 내 생각은 문제가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의 생각도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단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 됩니다.”라고 고백하며 그저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문득,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비교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 2장을 읽고 있었을 때 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경외감으로 충만해졌다. 인도하심을 갈망하였던 나의 마음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주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9)는 마지막 절에 이르러서야, 나는 하나님이 우리 아들을 치푸학교로 이끌고 계시다는 데 대한 확신이 내 마음 속에서 분명해졌다. 내 남편도 주님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말씀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3. 부모를 떠나 생활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우리 자녀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바로 여기가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필요한 곳이다. 물론 우리는 책임감 있는 부모로서 자녀들의 생활환경이 적절할지에 대해 합리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녀가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뿐이다. 허드슨 테일러가 Brinton 해변에서 위험한 중국내륙으로 갈 선교사를 모집하는 것의 책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직면했을 때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순종할 때 그분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실 것이다. 오히려 우리 자녀를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안전함으로부터 빼내어 우리의 뜻대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더 위험한 일인가?

한편으로, 자기 자녀에게 통신교육을 따라가도록 계속하여 압력을 주거나, 낮은 점수 때문에 벌을 주고, 그들의 인격적인 가치가 학문적 성취에 달려있다고 억지로 믿게하는 인근의 현지학교에 자녀들을 보낼 때 생길 심리적인 해를 생각해보라. 만일 하나님이 그러한 상황에 놓인 학교로 당신의 자녀를 보내도록 인도하신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그러한 심리적인 어려움을 통해 배우도록 돕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OMF의 멤버로서 자녀교육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데 있어서 자유롭다.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애정으로, 그리고 전적인 지지로 이를 수용하고, 다른 사람의 자녀들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를 위해서도 서로 기도할 것이다.

중국내지선교회(CIM) 출신인 한 나이 많은 부부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위해 마련한 교육방안에 대해 비통해하며, 불평하는 부모들은 그 자녀 역시 하나님의 공급하심(provision)에 대해 비통해하고 반항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수용적이고 믿음 있는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을 기쁘게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치푸학교가 내 아들에게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다른 어린 친구들은 내 아들과 똑같이 그리고 많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아들은 다르다는 것으로 계속 지목받지 않고 그 집단에 깊이 수용되어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러한 선택된 아동 집단에서, 그리고 경건한 교사와 기숙사 보모의 돌봄 밑에서 내 아들은 사회적인 면(이는 9세 된 우리 외아들에게 특히 필요한 부분)에서 훌륭하게 성장해가고 있다.

4. 우리 자녀가 외롭지 않을까?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특별히 새 학기가 시작될 때 그렇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보다 훨씬 더 쉽게 적응하며, 행복하고 잘 짜여진 일과에 곧 익숙하게 된다. 내 아들은 “첫 날 밤에는 울었지만 두 번째 밤에는 울지 않았어요.” 라고 집에 편지를 썼다. 주님이 그 학교를 방문하도록 경비를 마련해주셨을 때, 나는 얼마나 흡족하며, 분주하며, 품행이 방정하며, 어린이들을 잘 돌보는지에 대해 매우 감명을 받았다.

한편, 조금 외롭다는 사실은 우리의 자녀에게 새로운 면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된다. 내 경험으로는 10살의 나이에, 캐나다의 중국내지선교회(CIM) 호스텔에 거하게 되면서 꼭 필요한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배웠었다. 이는 전에는 몰랐던 일이었다. 이런 것들은 내가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이다. 만일 그 교훈들이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매우 귀중한 교훈들을 우리의 자녀에게서 빼앗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에게 기꺼이 폭풍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시고, 강인한 나무로 만드시려는 계획으로 주시는 고난으로부터 왜 우리는 우리의 어린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고 있는가? 분명히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의 파멸을 계획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 자녀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데 있다. 우리는 모든 엄마 아빠의 사랑의 위대한 원천인 하나님보다 우리의 자녀를 더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5.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랑을 그곳에서 받게 될까?

하나님이 그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 그것은 냉대와, 미움과, 오해와, 심지어 죽음까지도 감수한 것이었다. 모세의 어머니는 그를 이교도의 궁전으로 보내야했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자기 자녀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늙은 제사장에게 자기 아들을 맡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녀를 매우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 찬 환경으로 보내도록 요구하신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우리 자녀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한 세심한 훈련을 받은 교사들과 기숙사 부모들이 있다. 하나님도 알고 계시듯, 우리가 우리 자녀에게 줄 수 없는 좋은 것을 교사들이 우리 자녀에게 주고 있지 않겠는가? 싱가폴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동안, 어떤 가정에 치푸에 다니고 있는 한 아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그의 두 형이 지금은 주님과 멀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들이 세계여행을 하는 동안, 그들의 치푸학교 교사와 기숙사 부모를 방문했었다고 한다. OMF는 참으로 한 가족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치푸의 스텦들과 우리 자녀를 공유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보장은 어린양을 그의 팔로 안아 그분의 가슴에 꼭 품고 있는 사랑의 아버지께 우리의 아들, 딸들을 위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주 학교에서 오는 편지는 우리와 자녀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준다. 기숙사 부모, 교사, 자녀들의 편지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녀들이 길 건너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자녀의 삶과 성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성탄절과 여름방학 두 달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자녀들 주심을 감사하고, 또 그들은 부모의 존재에 대해 더욱 감사를 느끼곤 한다. 비행장에서 우리 자녀를 팔로 감싸 안는 순간, 단 몇 분도 낯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속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휴가 때는 매우 특별한 기간으로 우리 자녀에게 여분의 시간과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적인 시간이 되는 것이다.

6. 자녀와 헤어지는 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내가 이 질문에 대해 계속 근심하고 있었을 때, 때맞추어서 두 자녀를 치푸에 보낸 다른 선교사 엄마로부터 신앙적인 격려의 말을 듣게 되었다. 주님은 그 전에가 아니라 꼭 때가 되었을 때에야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주실 것이다. 나의 경험들은 계속해서 그녀의 말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고,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기 보다는 염려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해 왔던 나 자신에 대해 매우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올바를 선택을 하였다는 하나님으로부터의 확신을 먼저 갖게 되자, 헤어지는 데 대한 무서운 고통이 적어도 죄책감과 뒤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아이가 처음 집을 떠날 때, 우리의 한 부분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사려 깊은 동료 선교사들은 우리를 해변가로 데려가 놀게 했다. 나의 쓰라린 마음의 눈은 대만해협을 건너, 전날 우리 아리를 데려갔던 끝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나의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들을 내가 해냈다는 희열감과 안도감으로 충만해졌다.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렸던 것이다. 황홀하게도 나는 “주님, 우리가 그것을 해냈군요! 우리가 그것을 해냈군요!” 라고 외치면서, 밀려오는 파도를 뛰어 넘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예비된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풍성하였다.

친한 친구들은 종종 “내가 그 일을 결코 할 수 없을 거야” 라고 말하곤 했다. 글쎄, 누가? 나도 못하고 당신도 못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들은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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