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18_03_우리 아이들과 헤어졌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 2001년 3월 3일
- 6분 분량

우리 부부는 국제 OMF 선교회 소속 선교사로서 1994년 허입 당시부터 아이들을 말레이지아 카메론 하이랜드에 있는 OMF 선교회의 선교사자녀 학교인 ‘치푸 학교(Chefoo School)’에 보낼 것을 미리 결심했었다. 태국에 들어가는 OMF 신임 선교사들은 태국의 언어 및 문화를 익히기 위해 적어도 2~3년간 ‘땅짱왓’(시골 지역)에서 보내야 하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우리는 자녀교육을 위한 다른 방안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국에 들어간 지 두 달이 조금 넘어서 우리는 큰 딸 주랑이를 그야말로 이역만리(異域萬里, 당시 우리의 느낌에) 말레이지아로 보내야 했다. 겨우 만으로 다섯 살 반 된 딸 아이였는데...
다른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주랑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우리에게도 참 힘들었다. 약 2년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마음을 준비해 온 일이었지만 참 힘들었다. 그러나 주랑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미리 계획을 세우고 준비해 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주랑이에게 혼자 머리를 감는 법, 목욕하는 법 등을 서서히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장차 가게 될 치푸학교의 예기를 들려주면서 학교에 대해, 기숙사 생활에 대해 좋은 기대감을 가지도록 돕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랑이는 적당한 독립심을 가진 아이로 자랐고, 부모를 떠나 말레이지아에 살면서 학교생활, 기숙사 생활에 아주 잘 적응해 주었다.
주랑이가 치푸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우리 부부가 영국에서 6개월간 언어 연수할 때 주랑이를 좀 일찍 영국 초등학교에 한 학기 다녀보게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언어 연수 후 싱가폴 OMF 국제본부에서 신임선교사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거칠 때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치푸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미리 친숙함을 가질 기회를 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자녀를 가진 선교사로서, 자신이 사역할 선교지의 교육 환경, 소속한 단체의 정책, 부모의 기대 및 아이의 장래 등을 미리부터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각 자녀에 대한 교육 계획을 미리 미리 세우고 아이를 그 계획에 따라 일찍부터 준비시키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의 교육환경 적응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주랑이를 처음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전 날 밤, 우리 부부는 마지막으로 주랑이를 위해 손을 맞잡고 함께 기도했다. 당시 우리 부부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걱정이 있었지만 그 중에도 가장 나의 마음에 있었던 것은 치푸학교의 서양식 음식과 건강이었다. 아무래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없을 거라는 것과 서양 음식과 말레이시아 음식을 잘 먹을 수 있을까, 건강에는 영향이 없을까 하는 거였다. 그리고 남편은 아무리 기숙사 보모 선교사들이 좋은 분들이라 해도 그래도 친 아빠만큼 잘 돌봐줄까, 그것도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서양 분들인데 하는 생각이 항상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참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은 우리 부부 각 사람에게 그 문제들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다. 남편에게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마23:9)는 말씀을 입술로 고백케 하시며, 비록 주랑이가 육신의 아비 품을 떠나도 영원한 아버지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양육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다. 치푸는 해발 1,500~2,000 미터 이상의 고원지대인 카메론 하이랜드 산지 위에 있기 때문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세 시간 동안 봉고차로 올라가면 어른들도 대부분 멀미를 한다. 그런 위험한 여행을 어린 몸으로 일년에 4번이나 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남편에게는 하나님의 그러한 약속이 큰 위로가 되었다. 엄마인 나에게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비록 채소를 먹으며 사람의 생각에 음식을 조금 부족하게 먹고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풍부한 영양을 섭취한 다른 소년들보다 더 건강케 하신 것을 상기시켜 주시며, 주랑이의 건강과 육체적 성장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주랑이가 치푸에서 생활한 3년 동안, 그리고 야로이는 한 학기동안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때때로 야로이는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엄마 오늘 점심에는 밥을 두 그릇 밖에 안 먹었어요. 왜냐하면 반찬이 별로 맛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음식이 입에 맞을 때는 몇 그릇이나 먹었으랴...
주랑이, 야로이가 치푸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학교 선생님들과 보모분들, 그리고 OMF의 세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생님들과 보모들은 각 아이의 정서적, 심리적, 육체적, 지적 발달 상황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편지로, 긴급할 때는 전화 등으로 세심하게 부모에게 알려 온다. 어떤 일을 과장하거나 약화시키지 않고 가능한 한 사실 그대로를 부모에게 알려준다. 주랑이, 야로이는 학교의 이런 정책에 따라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 왔는데 가끔은 카드, 그림, 글짓기 등을 동봉해 오기도 해서 우리를 기쁘게 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구체적으로 보는 것 같아서 위로가 많이 되었다.
아직 글을 못쓰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선생님이 더하거나 빼지 않고 아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적어서 부모에게 대신 보내 준다. 심지어 부모가 들어서 아주 속상할 이야기도 그대로 적어 보낸다. 이런 부모와 교사, 보모 간의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의사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부모나 자녀들이 좀 더 안심하고 각각 선교지와 치푸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가 부모로서 지난 첫 텀 기간 중 3년간 아이들에게 써보낸 편지 수만도 족히 200여 통은 넘을 것이다. 편지를 통한 의사소통은 일상생활 중의 평범한 의사소통 보다 더 질적인 상호 긴밀한 관계를 형성시켰다. 비록 일년에 8개월 이상을 서로 떨어져 살았으나 서로의 사랑을 더 긴밀히 느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부부는 일년에 1~2회 정도 치푸학교의 ‘Half term’(학기 도중 부모를 초청하여 함께하는 프로그램) 기간에 아이들을 일주일 정도 방문할 수 있었는데, 그런 정규적인 방문을 통해 아이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함께한 것을 통해서도 너무나 좋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지면관계상 자세히 쓰지는 못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2년 동안이나 치푸학교에 홀로 떨어져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말, 역사, 음악 등을 가르치며 돌봤던 이예린 선생님 같은 헌신적인 MK 사역자들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이 그 곳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치푸에 방문해도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잘 수는 없었다. 부모가 오지 않은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기에 몇몇 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 정책에 따랐다. 치푸학교 방문을 마치고 우리 부부가 돌아올 때는, 아이들을 치푸학교에 보내기 전 날 저녁처럼 가족 성찬식을 했다. 처음에 우리가 이런 가족 성찬식을 한 이유는 주랑이가 첫 학기를 마치고 와서 방학을 함께 보내고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기 2주 전부터 울며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랑 함께 있고 싶다는 주랑이를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설득하다가 함께 울기도 하고, 주랑이를 그냥 꼭 안아주기도 하고, 이러기를 반복하다가 보내기 전날 성찬식을 하기로 했다.
이 가족 성찬식은 비록 육신의 부모를 잠시 떠나지만 영원하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늘 주랑이와 야로이를 지키신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더욱이 시각적으로 다시 상기시켜 줬고, 우리 가족의 믿음을 더 강화시켜줬다. 놀랍게도 성찬식을 갖은 그날 저녁 주랑이는 너무나 평안해 졌고, 다음날 아주 밝은 모습으로 치푸로 돌아갔다. 그 후로 이 성찬식이 좋은 가족 전통이 되었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주랑, 야로이에게 가족 성찬식의 의미를 잘 이해하도록 도우셨고, 또 하나님께서 그 성찬식을 통해 우리 모두를 위로하시고 힘주셨기에 함께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비록 헤어진 그 날 저녁에는 잠시 흐느낌의 시간들을 부모나 아이들이 다 가져야 했지만...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선교지 집에 돌아오면 우리는 아무리 사역이 바빠도(미리 계획을 다 해 놓기는 하지만) 가족끼리 며칠을 함께 보내며 가족의 재회를 기념하는 질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을 했다. 휴가를 이용하여 OMF 휴양지에서 함께 보내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함께 경건의 시간을 가진 후 서로 나누고, 기도, 수영, 게임, 비디오 관람 등을 함께 하면서 그 기간 중에는 주로 아이들이 원하는 일들을 가족이 함께 했다. 평일에는 아이들이 해야 할 학교 과제와 또 한국어 공부를 했는데, 쉽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치푸에서 돌아오면 일단 친한 친구가 없었다. 또 치푸 스쿨에서는 수업 후 항상 재미있는 여러 가지 활동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지루하다는 느낌은 가질 새가 없었고, 학교도 산속에 있는 자연적 환경인지라 등산, 벌레잡기, 정글탐험, 계곡 물놀이, 신기한 파티 등을 하곤 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집에서 지내는 2달간의 방학동안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 아이들이 게임을 좋아해서(그 당시 주랑이는 학교에서 게임 클럽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게임을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게임을 해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또 금요일 저녁은 ‘가족의 밤(Family Night)’으로 정해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잠을 자는 특권(?)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너무너무 좋아해서 금요일을 기다리며,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제안하고, 함께 연구하면서 서로 친밀해 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우리 부부 역시 정말 그 시간을 즐겼다. 때로는 치푸생활에 적응된 주랑이의 사고방식이 부모인 우리와 달랐기에 서로 그 차이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가족간의 밀도 있는 시간들이 우리와 아이들을 서로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아이들이 치푸에 있었을 때 써 보냈던 편지들과 그 때 우리 부부의 일기장 보았다. 그때의 감정과 일들이 여전히 생생히 되살아 나며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 아이들과 떨어져 지낼 수 있었지?’하고 스스로 의문이 생길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은혜를 주셨고, 특별히 우리와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함께 기도해 주었던 많은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던 그 3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최선의 길 이었음을 다시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작년에 두 번째 텀을 시작한 지금, 주랑이(6학년)와 야로이(3학년)는 우리와 함께 살며 방콕의 한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헤어져 생활했던 적이 있었기에 다시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앞으로의 몇 년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지를 우리 부부나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얼마동안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 우리 부부도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할 결심만 하고 있다면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에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지금, 우리 부부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린다. 지금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모든 선교사님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 정은선 선교사는 남편 김종명 선교사와 함께 태국 방콕 북부의 클롱루앙시에서 교회개척 및 대학생 사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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