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18_06_나의 최고의 파트너, 하나님
MK 교사 선교사 훈련 캠프를 마치고
2월의 마지막 날 우편으로 받은 몇 장의 사진은 그리운 태국의 모습들을 다시 보여주었다. 그 중 한 장은 짚단과 나무로 지은, 지붕도 담도 없는 태국 롭뿌리의 시골교회(예배실이라기 보다는 예배터라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는)에서 10여명의 성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에는 아주 특이한 모양의 짝짝이를 치시며 찬송가를 부르시던 예배 인도자 할아버지, 홍콩 영화배우를 닮은 잘생긴 아저씨, 아주 특별한 점심식사를 내어주었던 환한 미소의 아주머니, 힘들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 주를 살아간다고 간증하셨던 무뚝뚝한 표정의 점잖은 할아버지, 예배시간 내도록 젖 달라고 울던 꼬맹이, 길 안내와 통역을 해주셨던 팀(Tim) 선교사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팀 네 명이 환한 미소로 웃고 있다.
두 주간의 생활동안 나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곳이 바로 여기다. 이 교회는 이름도 없고 목회자도 없다. 그냥 장소와 성도들과 하나님이 계시다. 교육 행정가들 몇몇이서 함께 세운 교회라고 했다. 처음 선교지를 찾은 나는 여기서 소리 나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형제들을 보았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아주 이상한 언어지만, 또 처음 보는 이상한 악기만, 너무나 순전한 눈빛으로 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찬양하는 이들을 보았다. 나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동일하게 저들의 머리이시며,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우리가 한 지체라는 사실이 너무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식사교제 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타이어, 영어, 한국어 이렇게 3개 국어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의사소통의 한계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지긋한 미소와 표정만으로 우리의 사랑을 나누었다.
두 주 동안 MK 교사 선교사 훈련캠프를 다녀와서 “느낀 점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百聞이 不如一見” 세 명의 스텝과 스무 명이 넘은 현직 선생님들, 그리고 교사가 되길 희망하는 대학생을 포함한 32명의 참가자가 한 팀이 되어 방콕과 치앙마이, 롭뿌리 등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들을 방문하고 그곳에 계시는 선교사님들과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리고 학교 방문과 강의, 토론을 통해 선교사 자녀 교육과 기독교 교육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고민하며 함께 구상한 대안들을 나누었다. 책에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던 것들도 직접 눈으로 보며 들었을 땐 쉽게 이해하고 체득하게 되었다. 또, 많은 선교사님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의 사역과 삶, 크고 작은 고민들을 보고 들었다. 그리고 내가 교사선교사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장밋빛 환상이 아닌 현실적인 부분들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동역자들의 중보기도의 힘을 날마다 몸으로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기도가 선교의 최전선이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음식에 적응하는 것이나, 작지 않는 그룹이 이곳저곳을 이동하며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때나, 사람들 한명 한명과의 만남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구하고, 의지하면서 움직였다.
현지에서 MK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는 미니학교, 토요 한글학교, 한국 홈스쿨, 미국 홈스쿨, 국제학교 등 아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선교사님들의 다양한 사역과 처해진 상황, 교육관에 따라 자연히 자녀교육 방법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국제학교든 홈스쿨이나 미니학교든 우리나라 보다는 국제 선교단체에서 세운 학교들, 또는 미국에서 세운 학교들이 제도나 행정적인 면, 학습교재 면에서 훨씬 안정되어 있었다. 짧은 우리의 선교역사와 MK교육에 대한 필요성 인식, 이제 막 시작된 실제적인 사역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표시인 듯 했다. 그러나 국제학교에 계신 선교사님들은 선교사의 새 물결을 이루는 아시아, 특히 한국 선교계에 ‘한국 MK들의 교육문제와 한국인 교사의 시급성’에 대해 계속적으로 권고하였다. 아무것도 준비해 놓은 것이 없는 우리들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두 주 동안 우리 팀 사람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은 생각이 바로 이것, “준비”이다. 말씀과 기도의 개인 영성 훈련과, 영어를 겸비한 국제적 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서둘러 준비를 시작하라 하셨다. 이미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 선생님들은 구체적인 사역지를 생각하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나는 영 자신 없는 회화 실력과,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국제화’에 대한 도전, 그리고 영적 갈급함이 쇄도할 선교지에서 견딜 자신이 없는 나의 빈약한 영성에 대한 인식으로 이전엔 없던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렇게 갈등할 즈음에, 나의 마음을 채웠던 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었다. 불교나라 태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태국 현지인 교사들이다. 그들은 자기 학교에서 유일한 기독교인이라 더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또 불상에 절하지 않아서 학생들 교육상 교사가 본이 안 된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불교도가 아니지만 모든 이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을 더욱 강하게 하시려 고난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한다. 불교나라에서 이들의 하루는 ‘세상이 미워하나 결코 이상히 여기지 않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의 춤 되는 날’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자의 삶이었고,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의 전형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딤후1:7)
하나님은 나에게 더 이상 두려워 말라 하셨다. 내게 능력을 주신다고 하셨다. 선교사님과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주셨으니 ‘사랑의 수고’를 하라고 하셨다. 그들에게 필요한 한 사람의 ‘돕는 자’, ‘가르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헌신된 교사선교사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몸을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들을 서둘러 준비하라 하셨다. 그리고 완벽한 준비를 위한 자기노력 보다는 나머지 부족함들을 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라 하셨다. 그러나 너무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므로 준비가 덜 된 교사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하셨다.
태국을 다녀와서 하나님은 내가 내년에 단기교사로서 섬길 수 있는 곳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나를 사용하시기 원하시지만, 동시에 나의 바람과 상황도 고려하셨다. 지금은 탈춤 배우기와 세계관 공부, 수학교재 연구, 영어 공부, 이 네 가지를 구체적인 준비사항으로 결정하고 하나씩 시작했다. 나 혼자라면 준비하는데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교사 자녀들을 가르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어떤 분과 함께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분은 아주 세밀한 것까지도 일일이 챙기시고 가르쳐 주실 것이다. 나의 아빠 되신 하나님은 나보다 더 MK들을 잘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함께 준비하기엔 최고의 파트너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