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18_07_영원까지 나의 발걸음을...
MK의 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5~8)
1994년 여름이었다. 부모님의 헌신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정든 친구와 고향을 뒤로 하고 몽골이라는, 초등학교 사회책에서 잠깐 배웠던 미지의 나라로 가게 된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을 2달 정도 다니다가 자퇴서를 쓰고 학교 교문을 나오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왜 나는 다른 얘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을까? 왜 하필 하나님은 우리 부모님을 부르셨을까? 불만과 비관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있었던 때였다.
몽골,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 그 과거 현란했던 부귀, 영화는 어딜 갔는지 그들의 삶은 정말 바닥을 기고 있었다. 어차피 왔는데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살아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생각한 방법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말은 안통해도 몽골 현지인들과도 잘 어울렸다. 현지 음식도 입에는 안 맞았지만 맛있게 먹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속으로 약속했다. 난 절대로 부모님과 같은 삶을 안 살겠다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부모님께서 하시는 사역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길 3년, 1997년에 한국에서 선교사 자녀 캠프가 있어 참여하게 되었다. 선교사 자녀라는 동질감에 의해 많은 친구들을 쉽게 사귈 수 있었다. 그 캠프를 통해 많은 위로와 내적 치유를 받았고, 부모님께서 하시는 귀한 사역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거기서 그치시지 않으셨다. 부족하지만 나 또한 부모님처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이다. 할렐루야!
몽골에 내가 다닐 만한 고등학교가 없어서 학교를 위해 계속 기도하던 중, 한 선교사님께서 독일에 있는 Black Forest Academy란 선교사 자녀 학교를 소개 시켜주셨다. 서둘러서 필요한 서류들을 보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동생과 같이 그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해 가을에 BFA에 나는 10학년, 동생은 8학년으로 입학했다.
학교는 독일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공부다운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기숙사 생활은 처음 이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조금 힘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유럽에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여러 다른 문화권에서 다 모인 아이들과 교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넓어졌다. 또한 기독교 환경 안에서 지내면서 더욱더 영적으로 더욱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야 된다는 아픔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떨어져 있음으로 인해 가족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방학 때 마다 만날 때면 시간이 아까워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떨어져 있는 이 시간동안 오히려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는 전보다 더욱더 아름다워졌다.
12학년 때, 학교에서 매년 가는 선교 여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에 내가 가게 된 나라는 아프리카 튀니지란 나라였다. 처음 그들은 한국이란 먼 나라에서 온 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니 우리 사이에 있었던 벽이 허물어졌음을 느꼈다. 일주일이란 짧은 여행이었지만 정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꼭 보아야 할 것들을 보게 하셨고, 또 꼭 느껴야 할 것들을 느끼게 하셨다. 무엇보다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다는 확고한 확신을 내 맘속에 주셨다.
독일에서의 3년이란 귀한 시간이 졸업을 통해 막을 내렸다.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 된 정든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싫었다. 또 한국으로 대학을 와야 한다는 자체도 받아들이기가 조금 힘들었다. 다시 한국어로 공부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나눠진 마음을 앉고 독일을 떠났다.
매년 왔던 한국이지만 매번 올 때마다 문화 충격을 받는다. 한국이란 나라가 왠지 고향 같다는 느낌이 안 든다. 선교사 자녀들이 많이 느끼는 정체성의 문제가 나에게도 찾아왔는지.
오래 전부터 한동대에 입학하길 소망하였기에 오자마자 7월에 있을 면접과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불안한 마음으로 면접과 시험을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합격이란 기쁨의 소식을 주셨다. 또 하나의 간증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 해 가을, 한동대에 입학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꾼을 배출하는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 메스컴을 통해서 한동대의 좋은 부분만을 알고 있었던 나는 실제 학교의 약한 부분들을 보고 처음에는 많이 실망 했지만,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는 이미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것이라고 하는 한 선배의 말을 듣고 도전을 받았다. 학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곳에서도 역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독일과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었지만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덧 나를 혼란하게 하였던 정체성의 문제는 없어졌다. 나는 진정한 한국인이였던 것이다. 부모님께서 한국으로 대학을 오라고 권유하시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지금까지의 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몽골의 열악한 환경에서 축복하셔서 독일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시고 세계를 향한 비전을 품게 하시고 또 다시 한국으로 보내셔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정말 그렇다. 그 분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나의 곁에서 언제나 나의 그늘이 되시며 낮의 해와 밤의 달로부터 나를 지켜주신다. 나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으로부터 면케 하시며 나의 영혼을 지키신다. 지금까지 그리하셨던 것처럼 영원까지 나의 미래와 삶을 책임지시고 축복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