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19_01_현지 학교, 그 선택의 장점과 도전들
권두언
지난해 여름 MK 캠프 이후, 남미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고 서울의 한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예배 중에 내가 간간이 영어통역을 해 주긴 했지만 속삭이듯 말하는 그 말을 여러 명이 다 알아들을 수는 없어서 무척 난감했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뒷줄에 MK 캠프에 참석했던 보았던 남미에서 온 자매 두 명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 통역을 부탁했더니 서바나어로 얼마나 잘 통역해 주는지, 나 자신이 다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그 아이들은 남미에서 현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바나어를 그렇게 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MK NEST가 설립된 이래 하나님께서 국제 기독교/MK 학교와의 교류를 위한 문을 열어 주셔서 그동안 국제 기독교/MK 학교에 다니는 한국 자녀들을 위한 학교측의 이해와 배려가 많이 증진되었다. 그래서 자연히 ‘엠케이 저널’도 지난 몇 호에 걸쳐 국제학교와 관계한 내용들이 많이 실렸었다. 한국 선교사 자녀 전체에 관한 정확한 통계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GMF의 경우를 본다면 MK들의 약 절반 가량이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한국 MK 교육 방향성에 보다 근접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MK 교육에 있어 국제 기독교/MK 학교가 최선의 선택이라든지, 그 외의 다른 형태의 교육이 더 열등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지 학교를 선택한 경우 다른 어느 선택보다도 더 훌륭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지 학교를 선택한 경우에도 따르는 대가와 도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잘 보완하기만 한다면 현지 학교는 한국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육적 선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현지학교’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어보길 원한다. 선교지 마다 상황이 다양하여 한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지학교’와 관련된 공통적인 이슈들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고자 한다.
대개, 자녀교육을 위해 현지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는 현지 교육 수준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높다고 생각되는 경우, 국제학교가 있지만 학비가 너무 비싼 경우, 혹은 현지학교 외에는 전혀 다른 선택권이 없는 경우, 특별히 부모가 현지인과의 동화를 중요시하여 자녀를 현지학교에 보내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학교를 선택을 하기 전에 현지학교를 방문하여 커리큘럼과 교육 여건을 살펴보고, 현지인들의 평가가 어떤지 들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자녀를 어느 학년까지 다니게 할 것인지, 그 이후의 계획은 어떨지 미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두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 현지학교를 선택할 때의 장점들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현지학교에 다니는 경우 부모와 함께 거주하므로 가정교육에 유리하다. 자녀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부모의 가치관과 삶의 모본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생각할 때, 자녀들이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거하면서 돌봄과 양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학교교육이 가져다주는 효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자녀 셋이 모두 현지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한 선교사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해 더 자상한 관심을 갖고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오고 있었고, 자녀들은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 안정적이고 신앙적으로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현지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그들과 여러 면에서 부족함 없이 교류하기에 삶이 훨씬 개방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 부모 선교사는 한 가족으로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신앙적인 면에서도 함께 성장해 올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 했다.
둘째, 자녀들이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현지인과 더 잘 융화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예와 같이 현지학교 교육을 받는 자녀들은 현지 문화와 언어에 익숙해질 수 있다. 따라서 현지인과 더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자신감을 갖고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MK들의 특징상,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해 깊이 알고 누릴수록 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현지 문화(host culture)와 부모 문화의 이중적인 정체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자라난 문화에 대해 유리되거나 그 문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일부를 부인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불행한 것이다. 따라서 현지인의 시각으로 현지 문화와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와 더욱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교육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담임교사가 3-5년씩 연속적으로 같은 반을 맡기 때문에 또래 그룹에서 오래 지속되는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은 이동이 많은 MK들의 특성을 생각할 때 장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안식년을 맞아 본국 사역을 하고 다시 현지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친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다른 MK 학교보다는 훨씬 안정감을 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녀와 잘 맞지 않는 교사가 담임을 했을 경우에는 수년간 그 교사 밑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될 수도 있다.
셋째, 부모들에게 사역의 접촉점과 기회를 만들어 준다. 아무래도 현지 교사들과 학부형, 현지인 자녀들과 접촉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런 계기가 많고, 이를 통해 사역으로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동유럽에 있는 한 선교사는 자녀가 현지학교에서 어려운 현지 언어를 배우며 힘들어하는 것을 보다가 기도하던 중에 동네 아이들을 파티에 초대하여 친구가 되게 해 주었는데, 급기야는 이것이 정기적인 어린이 성경공부반으로 자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자녀교육을 포함한 선교사 가족의 전체적인 삶이 현지인들과 더 많은 통합을 이루게 될수록 선교사들을 바라보는 현지인들은 한층 신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반드시 어떤 기독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인 가족으로서 그들 가운데 같이 애환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자녀들이 부모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진다. 물론 다른 학교 유형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어느 모로든 부모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기회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현지학교를 다니는 경우는 현지에서 사역하는 부모들과 함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 이 말은, 부모보다 현지어를 잘 하는 자녀를 앞세워 부모가 못 다하는 사역의 짐을 자녀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녀가 현지어를 잘하고 그 문화를 이해하며, 현지인들과 자연스레 동화되는 것은 부모가 사는 삶이나 활동하는 영역이 자녀와 유리되지 않고 같은 장(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면이 있는 것이다. 한 연구 조사서에 따르면 성인 MK들 중에서 부모를 따라 선교 사역을 위하여 헌신하게 되는 비율이 약 18%가 된다고 하였는데, 그들 대부분 성장기간에 부모의 사역에 동참한 경험이 많이 있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다섯째, 교육비가 비교적 저렴하다. 대부분의 현지학교는 학비가 적게 들거나 무상교육인 경우가 많다. 한국 선교는 최근 20~30년간 급성장함에 따라, 갑자기 많은 수의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되면서 선교사들의 모금문제가 쉽지 않은 도전이 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생활비도 채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선교지로 나가기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하며 희생적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자녀교육만은 최고로 하려는 열심히 있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라도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재정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리하여 간혹 국제학교의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사역에 영향을 주면서까지 여러 가지 부담을 안고 있는 가정도 더러 있다. 심지어는 “자녀교육을 위해 선교지에 갔느냐? 선교하기 위해 선교지에 갔느냐?” 라는 질문이 제기될 정도이다. 그에 비하면, 교육비의 과도한 지출이 없이 학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현지교육의 장점이 한국 선교사에게 더욱 두드러지지 않겠는가.
여섯째, 현지를 위하여 대(代)를 이어 더욱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모든 MK가 다 부모 뒤를 이어 선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부모와 같은 선교지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선교지에 대대로 남아 그 나라의 교회와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기여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언더우드 선교사 가족들이 그러한 역할을 해 왔고, 특히 최근에는 린튼 선교사의 후대들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독특하고도 중요한 역할들을 해냄으로써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축복을 주고 있다. 현지교육을 받고, 현지인들과 깊이 동화된 MK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대를 이어 그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더욱 효과적인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면 그것은 한 개인으로서 일류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고 성공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깊고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현지 교육을 선택하는 것에 따르는 도전들이 있음을 또한 직시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도전들을 간과하여 제대로 준비를 시키지 못하거나 보완을 해 주지 못한다면 위에 열거한 장점들이 별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도전이란 어떤 것들이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며 돌보는 것이 필요할까?
첫째, 현지 학교는 외국인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하지 않고 일방적일 수 있으므로 자칫 자녀가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현지학교는 현지문화를 강력히 따르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자녀들이 교사나 학생들로부터 오해와 비난, 따돌림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국제학교에서도 많이 일어날 수 있지만, 국제학교는 그래도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국제학교라는 성격상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높은 반면, 현지학교는 그런 문화적 민감성과 배려가 덜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준비는 자녀를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된 아이로 키우는 것이라고 하겠다. 새롭고 낯선 환경 가운데서 상처를 극복하고 스스로 적응 해낼 수 있는 내적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내적 탄력성을 키워 주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이해와 지지, 긍정적인 강화가 중요하다. 또한 현지인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갖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키워주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은 자녀의 학교 적응을 위해서 뿐 아니라, 기독교적인 인간관을 심어주는 데에도 좋은 역할을 하게 된다. 학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자녀는 역시 부모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현지학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동기와 절차, 태도를 보여주었는가가 자녀가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적응하는가에 큰 영향을 준다. 만약 현지학교가 가장 싸니까 할 수 없이 그 학교를 보낸다고 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이는 자녀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 되겠는가? 만약 부모가 그 학교의 열악한 환경이나 교육 내용에 대해 무시하고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자기 자녀를 선교의 희생물인 것처럼 대한다면 이는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는가?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므로 사전에 그것들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면서 결정을 내리고, 일단 결정이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선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현지학교의 장점을 감사한 마음으로 극대화시키고, 약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자세로 상황을 받아들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창의적 대안을 찾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외에 적응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 중 하나는 자녀가 학교에 가기 전에 현지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부모가 현지어로 아직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면 다른 현지인 조력자를 통해서라도 학교 측과 미리 상담하여 협조를 구하고, 자녀의 교육을 위해 최대한의 여건을 마련하여 어려움이 있을 때는 즉시 그 문제를 파악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교육 수준이나 여건이 열악하여 교육적 동기가 저하될 수 있다. 현지학교라고 해서 모두가 교육 수준이 낮거나 환경이 열악한 것은 아니다. 선교지에 따라서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한국보다 훨씬 교육적으로 앞서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현지학교를 선택하는데 있어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선교 현지의 교육 여건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현지학교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다른 창의적인 방법으로 보완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현지의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을 몸으로 함께 느끼며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훌륭한 교육의 일면이다. 많은 양의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습득시키는가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배우는 기쁨을 계발시켜 주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비형식적, 비공식적 교육 환경을 통해 보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책이나 비디오를 보고 같이 얘기를 한다든지, 현지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고 탐구하는 기회, 시나 음악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한 토론과 참여 등을 통해 교과서나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살아있는 참된 지식을 배울 수 있고, 그 배움이 가족간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증진시키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까지 이어지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선교지의 상황은 이런 면에서 아무리 열악하다 하더라도 부모가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교육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입시경쟁으로 인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긍정적인 차원에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여기에서 부모의 교육에 대한 철학이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고 보겠다.
셋째, 현지의 종교, 이념의 영향으로 학교 생활과 신앙발달 면에서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슬람 국가나 불교권, 구 공산권 국가의 교육 내용이나 학교 환경이 자녀들의 세계관 형성과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때는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종교 행위를 하도록 압력을 받기도 하고, 공산주의 사상이 그대로 배어나는 학과 내용과 군사 훈련과 같은 활동들을 접하게도 된다.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는 극심한 남녀차별, 결혼관 등의 세계관과 관습 때문에 사춘기를 지내는 여자아이들이 그 학교와 사회의 문화에 적응하며 지낸다는 것이 큰 갈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지 문화권의 환경에 따라서 어떤 선교사들은 자녀들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현지학교를 다니게 하고, 고학년이 되면 다른 유형의 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현지학교의 문화적, 교육적 요구나 압력이 너무 세기 때문에 자녀의 적응과 신앙발달에 너무나 큰 장애가 된다면 현지학교를 선택한 것에 대해 재검토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교사에게 잘 설명하여 양해를 구한다면 학교에서의 종교 행위에 대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면제받거나 한국어 내지는 한국 국사를 공부할 수 있도록, 혹은 등교를 늦게 하거나 도서실에서 독서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어차피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타종교도 실존하고 있는 세상이므로, 어쩌면 그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 더 철저히 고민하고 성경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완벽한 것을 기대하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도 그러한 현실 자체는 세상의 실존이며, 그 실존을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로 다루는 태도를 배우는 것도 교육의 큰 몫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공산주의적인 이론과 접근에 대해서도 오히려 그것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우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노력이 요구되겠지만, 그런 필요가 바로 부모와 자녀를 성숙하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으리라 본다.
넷째, 현지 문화에 너무 동일시되어 본국 귀국시 재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국제학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활상의 관습이나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겠지만, 학생의 경우 교육의 방식과 수준, 용어,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등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가 있으므로, 본국에 돌아왔을 때 자칫 따돌림을 당하거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환경의 변화 때문에 생긴 부당한 결과에 대한 적개심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지학교를 보내는 동안 가정에서 한국적인 문화와 교육에 대한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귀국 적응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차후 그 자녀가 겪게 될 정체성 확립과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단기 교사 지원 활동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항상 본국에서 오는 교사들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 가끔씩 오는 모국에서의 다양한 지원이 효과를 더하는 것이다. 이러한 필요를 알리고, 교회의 지원을 요청하고, 그러한 협력을 위하여 현지 선교사들이 서로 연합하여 효율적인 여건을 마련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제한된 선교지의 여건 속에서도 한국인으로서의 뿌리의식을 키워나가며, 귀국했을 때 학교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국제언어인 영어의 진보가 더딜 수 있다. 현지학교를 선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영어교육이 뒤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없는 교육이라고 해서 반드시 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현재 한국 선교사들은 자녀가 현지학교를 다님으로써 영어 수준이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일고 있는 조기 영어 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을 떠나 한국어도 충분히 유창하지 못한데 외국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영어도 유창하게 못한다면 부모로서 불안한 마음이 들 수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선교사들이 자녀교육에 있어 너무 많은 기대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가지 선택을 했을 때는 그 선택에 따르는 장점을 취하는 동시에 도전들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교사로서 현지학교를 선택할 때 갖는 많은 장점을 생각한다면 영어에 대한 기대를 국제학교만큼 가지면 안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영어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영어로 인해 안달하며 불안해하거나 피해의식, 열등의식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녀교육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영어의 발전에 대해 부모로서 올바른 관심을 갖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대부분의 현지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 또 영어 발전을 위한 많은 자료들이 나와있으므로 이런 점들을 활용하면 영어의 진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북미에 있는 한인교회들에서 1.5세나 2세들을 통하여 지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현지에서 잘 준비하여 북미 한인교회들이 참여하도록 초청한다면 영어 캠프라든지 기타 다른 방법으로 자녀들이 영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보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차세대의 세계 지도자들은...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주도하게 될 다음 세대에는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때에는 세계무대에 아직까지 떠올려지지 않았던 나라들이 더 부상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로 영어 외에 제2, 제3의 외국어를 배우게 되는 자녀들은 어쩌면 더욱 독특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감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감각을 지닌 국제 시민으로 자란다는 것은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타문화와 타민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그 영광을 추구하는 인물로 자란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지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은 그런 면에서 남다른 강점을 갖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지어를 배우는 것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위에서 대략 현지학교를 선택할 때의 장점과 도전, 보완책들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동기에서든,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이 존중되며, 사랑받고 돌봄을 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선택이 성공적이 될 수 있도록 부모로서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신실한 태도가 요청된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 한국 선교 역사 속에서도 현지인들과 현지 문화와 깊이 밀착된 훌륭한 선교 2세대가 일어나 세대를 이어 그 민족과 나라를 위해 복음의 일꾼이 되는 아름다운 모델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