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19_02_“MK가 되는 게 쉽냐구요?”
MK의 글
제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4년 반이 되었네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보면, 힘든 날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저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저는 97년 3월에 이곳 중국에 왔어요. 지금은 이곳이 정말 살기 좋아졌지만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왔을 때만 해도 정말 낙후된 곳이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와있는 몇 년 안에 빠르게 발전해 가는 이 나라를 보면서, 이 곳에 더욱더 주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주위에 국제학교나 외국인을 위한 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저와 오빠, 언니 모두를 현지인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외국인이 적은 시절이라서, 제가 다니게 된 현지인 학교는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났어요.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 창에 매달려서 구경하는 아이들, 제가 어딜 가든지 졸졸 따라다니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쫓아오는 아이들... 또 제가 푯말에 있는 한자를 읽지 못해서 실수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 적도 있었구요. 학교서 한 반년 정도는 언어가 되지 않아서 수업시간에 그냥 멍히 앉아있었고, 쉬는 시간이 되면 그래도 특유의 활발함으로 애들과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었을 때, 두 달이나 되는 긴 방학동안 한국에 가고싶다는 우리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두 달간 내내 가정교사에게 중국어를 배우느라 씨름을 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중국에서 처음 맞는 여름이 너무 더워서 기온은 40도를 오르내리고, 그때에는 에어컨도 없었기 때문 하루에 최소한 네 번은 샤워를 해야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이 지나고, 그 다음 학기부터는 여름동안의 공부가 큰 도움이 되었는지 선생님의 말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 대화하고 하면서 언어 실력도 더욱 좋아지고, 공부하는 실력도 점점 늘었지만, 그 두 달간 방학기간처럼 진보가 빨랐던 적은 그 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해결되면 모든 게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제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그 때 부터는 학교공부를 따라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다른 학습 방식,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공부를 따라 가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중국에 온지 오래 되었고, 중국말을 잘해도 힘든건 변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제가 감사하다고 느낀 것들은 중국 아이들의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한번 친해지면 십 년을 헤어졌다 다시 만나도 예전과 똑같이 반가워하고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장해 가는 과정 중에서 어떤 유혹이나 그런 것들에 노출될 기회가 없었고, 그 시간에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던 것 갔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대학교에 들어간 제 오빠와 언니도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대학갈 때까지 한번도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습니다. 저도 앞으로 그럴 거구요. 그 시간에 더욱더 믿음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나중에 성년이 돼서 연애를 하는 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국에 지내는 기간동안 제게 힘이 되었던 것은 일년에 한번씩 하는 MK 캠프와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다보니 중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가치관이 점점 달라지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상처받고 연락이 끊기고 해서, 한국에 가도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돌아가기 싫었던 적이 많았는데, MK 캠프를 통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과 많이 만나게 되었고, 2주간의 짧은 캠프기간 중에서 많은 위로를 받고 MK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 참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자칫하면 소외될 수 있는 MK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헌신하시는 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저도 이제 2년만 있으면 대학생이 되는데, 하루빨리 캠프교사가 되어서 MK들에게 사랑을 주고, 제가 받은 것의 배로 줄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