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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_19_04_마음의 담을 넘는 현지 교육

부모 선교사의 글

초등학생을 둔 부모 선교사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자녀들의 학교입학 문제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단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부부가 아르헨티나 현지 공립학교로 자녀들을 보내게 된 동기는 무슨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이 있었거나 또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매달 약 1,000-1,500 달러의 수업료가 드는 국제학교는 물론 이거니와, 매달 약 200-500 달러의 수업료가 드는 이중언어 학교 혹은 사립학교조차 보낼 수가 없었던 우리의 경제적 형편 때문이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이자 마지막 이유이며, 다른 방법은 없었다.

같은 현지학교를 지금 7년 째 다니고 있는 큰 딸 새롬, 유치원 때부터 6년 째 다니고 있는 아들 아론(현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2년제 공립 유치원이 있었음), 나는 이들에게서 한번도 학교가 싫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한국 아이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선생님들의 사랑 속에 현재도 학교생활을 우수하게 잘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자녀들이 다니고 있는 현지학교를 잘 안다고 하여 아르헨티나의 모든 현지학교를 안다고 하면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에만 해도 현지학교가 434개나 된다. 이 학교들이 선택하는 교과서는 교장 선생님, 담임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각각 다르며, 그것도 매해마다 틀리다. 그래서 교육의 질적 수준과 면에 있어서도 각 학교마다 현저한 차이가 난다. 그리고 이 434개의 현지학교는 231개의 종일 반 학교와, 오전반, 오후반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하루 4시간만 공부하는 203개의 학교로 구성되어 있다(중,고등학교는 오전, 오후, 밤 반으로 구성). 거기에다 수많은 이중언어 학교와 사립학교의 교육수준까지 합치면, 천차만별인 셈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7년제의 초등학교 선택은 자율적이며, 매해마다 접수와 등록을 해야만 학년을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보통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9년 이상 같은 반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학교마다 틀리지만, 한 반 구성인원은 약 15-25명 정도이다. 학교 건물은 유럽식이라 운동장이 따로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가 7학년을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온다. 특히 저학년일 때는 이것이 부모의 의무 중 하나이다. 그러나 나는 새롬이가 4학년일 때 그 일에 대해 졸업(?)을 했다. 책임감이 강한 새롬이나 아론이의 생활 태도로 인해 학교에서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1학년 때부터 과락 제도가 있어, 3개월의 여름 방학 동안 보충 수업을 받는 아이들도 있다(그렇다고 학부모나 선생님이 공부를 강요하는 풍조는 절대 아님).

이곳은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하여 대학교까지 입학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러나 초, 중, 고등학교 졸업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대학교 졸업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별을 따기’란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그래서 학생들이 진짜 공부는 대학에 들어가서 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이곳은 과외 풍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자녀의 실력에 따라 중, 고등학교를 선택한다. 그리고, 기술학교, 상업학교, 예술학교, 인문학교, 음악학교, 등을 자율적으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 그러나 보통 7, 8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가는 2개의 유명한 공립 중, 고등학교의 입학을 위해서는 수많은 학원들이 있다(그것도 거의 1년 정도만 준비함). 그 외에 축구교실을 비롯해 여러 가지 학원들이 있지만, 어떤 과잉 경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자녀에게 필요하다고 생각 될 때만 보내곤 한다.

우리 자녀들이 현재 다니고 있는 오전, 오후반 학교의 큰 장점이 있다면, 촌지가 없고, 체벌이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나 편견이 없다는 점이다. 스승의 날에도 개별적으로 선물을 하기보다는 각 반 학부모들이 단체로 돈을 모아서 함께 선물을 사서 드린다. 그리고 모든 국경일마다 각 학년 별로 돌아가면서 그 국경일에 맞는 주제로 연극활동, 음악활동, 무용 등을 곁들여 학교 내에서 공연을 한다. 그 때는 모든 부모들이 초대되고, 함께 그 날을 기념하며 역사를 되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공연을 할 때는 모든 아이들이 골고루 배역을 맡곤 한다. 이 나라 어린이의 장점은 공연 시 배역을 맡을 때 절대 싫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언변술과 연기 소질들이 민족성 안에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내 주일학교에서도 한번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하는 어린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한편, 선교사 부모로서 현지학교에 자녀를 보내며,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치열한 경쟁의식이나, 경쟁을 해야한다는 동기부여가 없으므로 그 분위기에 동조되어 교육열이 식어진다는 점과 또 그것이 당연시된다는 점이다. 자녀들 또한 ‘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구심과 함께,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의식을 갖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학생으로서 공부를 해야될 시기가 있다는 부모의 설득력이 청소년기를 접어들면 들수록 점점 약화된다. 이것은 아마 이 나라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공부할 수 있는 풍조이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아론이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현재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구구단을 아직도 다 외우지를 못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못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율적인 방법이 때론 게으른 자를 만드는 셈이 되곤 만다. 이곳의 현지학교의 교육 수준을 한국과 비교한다면 아마 많이 낮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또 자녀로서 우리 가족 각자가 이 민족 가운데 살며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맡겨진 숙제를 충실히 하자고 설득해 본다.

그 동안 경제 문제를 핑계 대고 자녀들을 학교 이외의 학원에 보내지 못했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절대 자녀들을 혼자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이곳 문화풍조로 인하여, 자녀들을 혼자 학원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부부의 사역 활동시간과 학원 수업 시간이 수없이 겹쳐지는 상황에서 자녀들이 희생된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러나 부모의 사역 활동을 옆에서 가까이 함께 지켜보며, 때로는 함께 도우며, 그들이 자라 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손해만 본 것은 아닌 듯 싶다. 자기가 혼자 좋아하고 있는 여자 친구에 대해서, 때로는 갑작스럽게 달려와 자신이 방어할 사이도 없이 볼에다 뽀뽀를 하고 달아나는 여자 아이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론이, 이곳 사람들의 결혼 연령이 평균 18세 전후인지라, 커 가는 예쁜 딸을 향해 “너, 20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 전에 남자 친구를 만들면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엄포 아닌 엄포를 놓으면 “엄마, 엄마 딸을 어떻게 보고 말하세요?” 정색을 한다.

지금도 나를 처음 만나는 이곳 사람들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자녀를 어느 학교에 보내십니까?” “현지학교에 보냅니다.” 그 말에 그들은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선교사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특별한 존재로 다가가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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