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19_08_내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니...
부모 선교사의 글
11년 전 12월, 싱가폴에서 오리엔테이션 코스를 마치고 홋카이도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퍼부어도 퍼부어도 멈추지 않을 듯한 기세의 거친 눈보라였다. 그런 환경 속에서 심한 감기로 한바탕씩 몸살을 앓고 난 우리 부부에게 처음으로 부딪혀 온 고난(!)은 일본에 온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아직 일본말도, 일본문화에도 거의 적응하지 못했을 네 살짜리 아들과 두 살 반 짜리 딸을 일본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일이었다. 부모인 우리도 기본적인 일본말조차 거의 모르는 형편이었고... ‘이 아이가 과연 가서 무엇을 하다가 올라나... 선생님이 무슨 소리하는지 하나도 모를텐데...!’ 내심 염려가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작 선교사로 헌신하고 온 것은 우리인데, 아무런 마음의 준비나 훈련도 없이 선교지의 적나라한 문화 속에 몸으로 뛰어들어가 맞부딛쳐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과연 이 아이들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집단주의적 일본문화가 과연 우리 아이들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어려움을 예상하면서 나는 계속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다.
모든 살림을 다 정리하고 선교훈련원에 들어가기 하루 전 날, 한살 반 짜리 성진이와 막 백일을 지낸 윤진이의 모습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이 아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냐’고 하나님께 매달렸을 때 주셨던 그 말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14:26)” 하나님은 우리 부부가 얼마만큼 하나님 자신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가에 더 관심이 있으시며, 자녀 걱정은 당신께서 대신 해 주겠다고 하셨던 그 확고한 약속이 그때까지 계속 내 마음을 붙잡아 주셨던 것이다. ‘그래! 이곳에 오기 직전 성진이가 3층에서 떨어졌을 때도, 싱가폴에서 훈련받을 때 윤진이가 거의 전기사고로 죽을 뻔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이 조금도 상하지 않도록 해 주셨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감사하며, 몇 번이나 기도해주고, 뽀뽀해주고, 안아준 다음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가슴을 조였던가....
유치원에 다녀 온 첫 날, 성진이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자신이 얼마나 용감하고 멋진 사나이답게 하루를 잘 넘겼는지를 나에게 어필하려고 애썼다. 솔직히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문화충격의 장소였음이 성진이의 태도 속에 확실히 보였건만, 애써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고 하는 그 아이의 모습이 오히려 내 눈가를 적시게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빨리 일본 문화를 멋지게 소화해냈고, 우리로 하여금 일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전도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아이들과 같이 살 수 있고, 한국 아이로서 가져야 할 정서를 가정에 함께 있음으로 계속 유지할 수 있고, 그리고 일본 선교사로서 좀더 일본인들과 하나되고 싶은 마음으로 일부러 OMF의 치푸(Cheefoo)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마다하고, 성진이를 집에서 가까운 일본 현지학교에 보냈다. 그러니까 성진이는 우리가 첫 안식년을 가지기까지 2년 동안 일본 유치원을, 그리고 2학년이 되기까지 2년 동안을 일본 초등학교에 다닌 셈이다.
일본 초등학교에 입학한 성진이가 가장 많이 배워야 했던 것은, 자신이 다른 일본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소화하고, 이해하고, 용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성진이 자신이나 일본 아이들 스스로도 서로의 차이들을 인식할 만큼 성장해 있지 않음으로 이런 종류의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며칠 안되어 친구들이 “네 이름은 왜 우리와 다르냐”고 물어온 것 때문에 성진이는 꽤 당황해 하였다. 그리고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도 일본아이들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싶은데..” 하고 요구해 오기도 했다. 성진이의 마음을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동요하지 않는 자세로 성진이에게 “나는 한국 사람이라서 이름이 너희와 달라”라고 겁먹지 말고 친구들에게 말해 주라고 했다. 그리고 남과 다르다는 것은 하나도 창피한 것이 아니며, 엄마 아빠는 일본인들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하려고 일부러 이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성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함께 기도하고, 격려해 주었다. 성진이는 우리가 자신의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전혀 요동하거나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자신을 얻었고, 우리가 시킨 대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런 문제로 성진이에게 시비를 거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서 3학년과 1학년 생활을 각각 보냈다. 이 시절 또한 아이들에게는 큰 고난의 때였다. 집에서 한국말을 늘 했고, 한글을 거의 익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자란 한국 아이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성진이가 한국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2학기가 되었을 때 넌지시 나에게 해 준말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엄마! 아이들이 나를 이제는 일본 놈이라고 욕하고 따돌리지 않아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막아서 감옥에 갇혔던 다니엘을 물지 않게 해 주셨던 것처럼 아이들의 입을 막아주신 것이 분명해요...” 성진이는 한 학기가 지나도록 나에게 한마디도 자신이 그런 놀림의 대상이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린 것이 6년 만에 자기 나라라고 돌아와서 결국은 그런 취급을 받았으니... 얼마나 그 가슴이 조렸을까... 억울한 마음으로 처음에는 눈물을 흘렸지만, 하나님이 우리 아들에게 이런 귀한 간증거리를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눈물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뀌었던 것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한국 생활에 막 적응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다시 보따리를 싸야 했고, 우리 아이들은 제 3의 문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제 2기 사역을 위해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 우리 부부는 호주에서 3개월 동안 크리스챤 카운슬링 과정을 수료했는데, 그때 아이들은 그곳에서 영어학교를 다녀야 했다. 이 때를 계기로 아이들은 일본에 와서도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홋카이도 국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국제학교로 옮긴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으나, 우선은 우리가 ‘OMF’라는 국제 선교단체에 속하여 있으며, 국제적인 팀을 이루어 사역을 하고 있는 관계로 아이들도 영어를 사용하며 많은 외국인들과 교제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러한 부모의 사역환경을 즐기며 이해하지 못할 때, 엄청난 좌절감과 괴리감를 커가면서 더욱더 느낄 수밖에 없고, 또 부모에게도 커다란 짐이 되고,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학교 교육자체의 특성과 목표가 “일본 문화 속에 잘 적응할 일본인 양성”에 있음을 절실히 느꼈던 점을 들 수 있는데, 일본적 집단주의의 폐쇄적 요소, 그리고 비성경적 요소가 상급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더 짙어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인들을 사랑하나, 한국아이로써 그리고 선교사 자녀로서의 자녀들에 대한 우리의 교육의 목표는 좀 더 다른 곳에 있음을 우리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인도하심으로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곳에 학교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상당액의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부수적인 이유들이 되었다. 어떤 지역에서, 또 어떤 선교단체에서, 어떤 종류의 사역을 하느냐에 따라 모든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적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각 자녀들에게 그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교육환경을 허락하시며 아름답게 키우실 수 있으신 분이심을 믿는다.
지난여름, 중2, 중3이 된 윤진이, 성진이를 처음으로 한국에서 하는 선교사 자녀 캠프에 보냈다. 사춘기가 된 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기 나라를 이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의 6개월을 기도하며 엄청난 투자(!)를 한 것이다. 자기들과 비슷한 인간들(?)이 그렇게나 많음을 몸으로 체험하고, 큰 은혜 속에서 귀한 경험들을 하고 돌아왔단다. 한국에 가는 것이 너무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한다. “엄마! 되~게 은혜 받았어...!” 윤진이가 나에게 들려준 첫 마디다. 이 캠프를 위해 수고해 주신 수많은 분들께 어떻게 감사를 표현해야 할지... 이 아이들이 우리만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한국교회의 자녀로,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일본교회의 한 일원으로, 그리고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선교의 동역자들의 가족의 일원으로, 무엇보다 하나님께 자신들을 드릴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해 감을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