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21_03_한 알의 씨앗에 담긴 특별한 의미들
이른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에 나의 발자국을 새기며 뿌듯해했던 어릴 적 기억이 생각납니다. 특별한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닌,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그냥 발자국을 남긴 것인데, 왠지 그것이 자랑스러워 하루 종일 기분 좋게 지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마 눈다운 눈을 멀리 있는 산을 통해서만 보고 2년 동안 만져 보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한국에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눈 내리는 겨울 영준이와 수아와(저희의 자녀입니다) 함께, 새로 맡은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실컷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 준비하면서 생각한 알바니아의 2년은 정말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책도 많이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극구 반대하는 아내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잔뜩 가지고 왔는데... (역시 지혜로운 남편은 아내의 말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아 다시 가지고 갈 생각을 하니...) 그러나 지금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 짧았던 2년이었던 같습니다. 교실만 있고 제대로 된 것이 없이 시작한 한알 학교의 개교식이 바로 어제였던 것 같은데, 벌써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니...
5년 간의 한국에서의 학교생활, 또 2년 간의 알바니아에서의 한알학교 생활. 7년 간의 교직 경험은 결코 많은 경험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또한 결코 적은 경험이라도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동안 만나며 함께 했던 아이들도 150명이 넘어 결코 적지 않습니다. 특별히 사랑을 필요로 했던 아이들, 함께 축구를 하고 놀이 공원을 누볐던 아이들, 함께 눈 속에서 뒹굴며 장난을 쳤던 아이들, 나의 온갖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며 밀린 과제를 밤새워 했던 아이들, 2주간의 먼 여행을 통해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던 아이들, 난폭한(?) 교사를 만나 공포(?) 속에서 생활했던 모든 사랑스러웠던 아이들. 내가 만났던 모든 아이들이 특별했고, 모두가 하나님의 독특한 아이들이었지만,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유난히 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한알학교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어서 아닙니다. 아마 한국에서 생활했다면 그냥 평범하게 특별한(?)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한국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이 아이들을 저에게 특별한 아이들이 되게 한 것일까요? 그것은 한알학교라는 특수한 학교 때문일 것입니다.
유치반인 '삐악이반', 저학년반인 '스타반', 고학년반인 '한알반' 아이들을 모두 합쳐도 13명뿐인 작은 학교. 1층은 가정집(저희 집)이고, 2층은 학교인 작은 공간. 선생님과 같은 학생들이 조금만 넓게 앉으면 옆으로 지나갈 수 없는 작은 공간이었던 교실,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몇 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모여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 등 외형적인 조건들로 인해 이 아이들이 저에게 더욱 더 특별한 아이들이 되게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이 아이들이 저에게 매우 특별한 아이들로 남을 것입니다.
또 함께 했던 시간들도 한알학교 아이들을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아이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중앙기독초등학교(수원에 있는 학교로, 원천침례교회와 함께 저희 가정을 후원하는 곳입니다.)에서 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얽매어 지내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특별한 것을 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었지만 이곳처럼 자유롭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오전에 정식으로 인가 받은 학교인 'GDQ'라는 국제 MK 학교에 다니고, 점심을 먹고 오후 1시부터 이곳에 와 수업을 했기 때문에 일차적인 수업에 대한 부담이 적었습니다. 한알학교는 방과후 학교(After school)의 형태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기에 'GDQ'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중심으로(특히 국어를 중심으로 한 한국 교육과정) 보충 교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육과정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우면서도 편하게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국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각 학년에 맞게 진도를 나갔지만, 이곳 사정에 맞지 않는 것은 생략하고 다른 특별한 프로그램들을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와 함께 한 속담 배우기, 고학년의 한자성어, 종이 접기, 오목과 체스, 창의력 학습, 칠교 놀이, 성경 읽기와 말씀 암송, 새로운 찬양과 창작 동요 배우기, 서예와 단소, 크로키, 배드민턴 등과 함께 만두, 김밥 만들기, 연날리기, 산과 바닷가에서의 야유회 등 제 능력과 아내의 능력을 합쳐 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들 중에는 중간에 그만 둔 것도 있고, 잘 진행이 되지 않은 것도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 것들이 있었지만, 다양한 활동들을 아이들과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좋았습니다. 아마 이런 학교가 아니면 힘들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알반 아이들과 함께 만든 소설 [박얼큰의 모험기]입니다. 아직도 받아쓰기를 많이 틀리는 아이들이지만 서로 싸우며, 열심히 토론하며 최선을 다해 만든 이 소설은 아마 저와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아이들을 통해서, 그리고 한알학교를 통해서 제가 배운 것들이 저로 하여금 2년 간의 기억들을 더욱 더 특별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교사가 되면서부터 올바른 교육에 관하여, 기독교 교육에 관하여, 교사의 삶에 관하여 많은 생각들을 했으며, 저 자신에 그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더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지금도 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분주하고 바쁜 생활로 인하여 깊은 고민들이 적었지만, 이곳의 단순하면서도 여유로운(?) 생활로 인해 더 많은 질문들을 제 자신에게 던질 수 있었고, 또 더 친밀한 관계 속에 있던 아이들과 생활-아픔들과 상처, 즐거움과 기쁨, 갈등과 고민-로 인하여 제가 얻고자 했던 답(?)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사인 저에게 이런 특별한 경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저와 함께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기를 소망합니다.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어 실력을 늘려 주기 위한 강한 필요성을 가진 선교사님들은 원래 전일제 학교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고 계셨지만 교사 수급과 학교 운영에 관한 것, 중등 과정과의 연계, 학력 인정에 관한 것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전일제보다는 방과후 학교(After school)가 더 현실적이며 좋을 것을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0년 9월 14일 한알학교(한알은 '한국과 알바니아'라는 의미와 '한알의 씨앗'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는 시작되었습니다. 3명의 교사와 13명의 학생으로 오후 1시부터 4시 30분까지 수업을 합니다. 시작할 때 다같이 하는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진 다음 각반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초등학생들인 스타반과 한알반 아이들은 한 주에 한 가지 말씀을 암송하고 공부를 시작합니다. 유치반인 삐악이반은 주별로 주제를 정하여 수업을 하며, 스타반과 한알반은 국어와 수학을 중심한 한국 교육과정과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합니다. 학교의 운영은 선교사님들과 교사들이 모여 회의하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운영되지만, 수업에 관한 것들은 교사의 재량으로 특별한 제약 없이 여러 활동들을 할 수 있습니다. 학사일정은 방과후 학교인 관계로 국제 MK 학교인 'GDQ'의 일정에 맞추어 운영됩니다. 아이들이 2개의 학교를 다니기에 재정으로 많은 지출을 하지 못합니다.(다행히 오전 수업을 하다고 'GDQ'에서 수업료를 줄려 주어 전체 학비가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정적 부담이 되는 수업들은 피합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수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 한국의 교육과정과 문제집 풀이, 동화(이야기) 학습, 성경 읽기, 글짓기, 받아쓰기, 한자성어, 속담 배우기 등이고, 은 한국의 교육과정과 수학 문제집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은 저학년 경우는 가능한 영역이 조금 더 많아 잘 이루어지는 편이나, 고학년의 경우는 교육과정과 관계없이 가능한 부분과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하고 있습니다.은 정기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영역들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특별한 수업으로 종이 접기, 서예, 크로키 등의 수업을 하였습니다. 은 창작 동요 배우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일주일 한 개의 찬양을 배우며, 리코더와 단소를 배우고 있습니다. 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여 배드민턴 등을 2-3개월을 하다가 중단되었습니다.(동양인에 대해 잘 몰라서 관심과 편견이 강한 편입니다.) 대신 몇몇 아이들이 태권도 도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으로 칠교놀이, 창의력 학습지와 프로그램 등을 하고 있으며, 오목과 체스, 한자 배우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로 정기적인 도서관 가기, 봄과 가을 야유회, 설날 연날리기와 만두, 김밥 만들기, 발표회, 영화 관람, 야외 미술 학습 등을 가졌거나 가지고 있습니다. 유치원은 하루에 하나의 성경 이야기,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동화, 음악, 미술, 신체 영역의 활동, 아이들 각자 연령에 맞는 수와 언어 영역의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방과후 학교인 한알학교의 은 많지 않은 학생들이 있는 지역에서 학습 진도에 관한 부담감이 적은 가운데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학원처럼 방과 후에 이루어지기에 보충 학습으로 한국 교육과정의 필요한 영역을 재조정해 가르칠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 하지 않고 아이들이 모여서 하기에 학습 분위기가 생겨서 더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일 경우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어 가정에서의 보완적인 한국 교육도 더 좋은 이점들이 많다. 또한 아이들이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기에 중등과정에 대한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 집에서 혼자나 형제끼리 노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있다면 경제적인 부담과 아이들의 과중한 수업일 것이다. 한알학교 학생들은 오전에 국제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하지 않고 한알학교에서 하기 때문에 수업의 부담이 줄었고, 추가적인 부담도 적었다.
2년 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선교지에서 정말 잘 보낸 것 같습니다. 파송 교회인 원천침례교회와 성도님들, 중앙기독초등학교와 선생님들, 이곳의 선교사님들, 그리고 저의 후원 관리자였던 최병준 선생님과 지금 후원 관리자인 오상철 선생님 등 제가 아는 분들에서 모르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정말 2년간을 이곳에서 잘 생활하며 사역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설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절 말씀. 아이들에게 자주 해 주었던 말씀이며, 암송했던 말씀입니다. 제가 많은 분들의 사랑으로, 그 분들의 나눔과 도움으로, 그 분들의 기도와 협력으로 이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선교사님들이 더 많은 교사들의 협력과 사랑이 있다면 주어진 사역들을 더 잘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외국인 교사선교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현재 20명의 사역자와 함께 사역하고 있습니다. 20개의 사역에 협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나보다 더 많은 사역에 협력하며 사역하고 있는 분들은 드물 것입니다. 제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제가 협력하고 있는 사역자들이며, 그들의 사역의 모두 제가 협력하고 있는 사역입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이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며, 또한 제가 한알학교의 사역을 준비하며 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 생활할 저희 가정에게 주신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일이 있듯이 교사인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땅, 명령, 일은 아이들이며, 가르치는 것이며,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MK들은 저와 많은 그리스도인교사들 그리고 이 일에 부르심을 받은 많은 이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땅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더 많은 교사들이 이 아이들과 이 일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하나님의 가장 큰 명령이 더 잘 이루어지고,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