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21_04_내가 한국말을 잘 한다구요?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벌써 8년이란 세월이 흘려 12학년이 되었다. 필리핀에서 살았던 날들을 돌아보면 참 많은 추억거리가 있다. 외국 땅을 처음 밟아보는 설레임,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동네를 뛰어 놀던 천진난만함, 엄마와 함께 알파벳부터 시작하고 튜터 선생님과 영어를 배웠던 때, 추석날 보름달은 보며 한국생각에 울음을 터트렸던 그리움, 외국 친구들을 사귈 때 느꼈던 어색함과 신비감, 환상적인 필리핀의 저녁 노을을 보며 감탄했었던 추억 등,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에 가면 언어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 그런데 나는 필리핀 처음 갔을 때부터 마닐라 한국아카데미에 다니게 되어 한국 과목도 계속 배우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오면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 한국말을 잘하네" 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나뿐만 아니라, 나보다 필리핀에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친구들도 그런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한국말을 한국에 사는 사람들처럼 잘 할 수 있다는 건 한국아카데미만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다. 물론 영어는 미국학교에 다니는 애들처럼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선 모국어를 잘 할 수 있는 다음에 영어를 좀 더 깊이 배워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땐 부모님 따라 외국 땅에 가서 선교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는데 커가면서 나만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고등학교 진학 문제 등 앞으로의 진로가 걱정되면서 '당연'이란 생각이 점차 없어지고 '왜'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나는 내 나라에서 살지 못 하는 거지?'
'왜 나는 친구들과 친척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거지?'
'왜 나는 다른 애들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놀 수 없는 거지?'
'왜? 나는 보통 애들처럼(한국 애들) 평범하게 살 수 없는 거지?'
이렇게 풀수 없는 의문들이 틀 안에서 못 나오는 것처럼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님을 진심으로 영접하고 난 뒤에 '왜'는 내 머리에서 완전히 삭제되었고, 난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주님의 계획이고 '난'정말 축복 받은 자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부모님의 선교현장에서 같이 보고 배우며 경험하는 것이 내가 주님을 위해 일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 길 앞에 큰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물론 그분의 도우심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