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21_09_어둠 속에서 자라는 우리의 빛나는 딸들
번역글
* 이 글은 "Interact" (2001년 5월호) 에서 발췌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저자 에밀리 반 달렌과 남편 프랭크는 미국 콜럼비아에 살면서 장로교 개혁파 선교단체인 'World Witness' 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들을 1986년부터 1998년까지 이슬람 국가에서 교회개척사역을 하였다. 에밀리는 부모가 40년 동안 이슬람국가에서 사역한 MK이다.
(지난 호 내용 요약)
저자는 이슬람 국가에서 성장한 MK로서 자신의 기억을 회상하며, 특히 딸들이 성장하는 동안 당하게 되는 성적인 희롱과 경멸을 통해 이들의 내면에 왜곡된 자아상과 숙명론을 심어주는 그 문화의 두 가지의 거짓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하나는 여자는 열등한 존재이므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체념과 침묵으로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거짓된 숙명론이다.
우리 아이가 이런 두 가지의 숙명론과 싸우게 하기 위해서 어떤 무장을 시키겠는가? 그런 상황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리겠는가? 어떻게 하면 여자인 것은 기뻐할 일이며, 여자로서 미래에 놀라운 가능성들이 있음을 딸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겠는가
? 무기력함과 숙명론의 오해와 맞서 싸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우리 딸들이 희롱 당하고 학대받는 것에 굴복해버리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러다가 자녀들이 깊게 상처받으면서까지 자신을 섬기도록 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라는 거짓말을 공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거기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잘못한 사람은 내가 될 거야.' 이런 종류의 침묵은 비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다. 한 눈에 봐도 부적절한 성적 교환은 어떤 종류이든 간에 이에 대한 비난받을 사람은 가해자라고 우리 모두 명백하게 여기고 있다.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가! 그러나 우리 어른들은 웃기는 존재여서 때로는 당황함과 혼란, 충격을 겪는 와중에, 가까이 있으면서 제일 저항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을 나무라게 된다. 우리는 감히 우리 딸들을 건드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마주할 수 없기에 열이 오르는 순간 우리 딸들을 대신 바라보게 된다. "그 길거리를 걸으면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살펴보지 못했어?" 우리는 거대한 익명의 문화적 현실을 향해 우리의 격분을 풀어낼 수 없음을 느끼며, 그 감정을 쪼개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작은 얼굴을 향해 쏘게 된다.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이며, 때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제발 그리 하지는 말자. 아이들은 우리의 분노를 보고 배운다. 딸아이 역시 화내는 것을 배우게 되고, 여자이며 힘없는 자신에 대해 화를 내고, 어떤 면에서는 공격을 당하게끔 한 자기의 몸에 대해, 또 자기를 어려운 환경에 처하도록 만든 결정을 내린 부모를 향해, 그리고 자기를 보호하지 않으며 가치 있게 여기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화를 내게 된다. 그리고 침묵 속에 분노를 참는 법을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저항하거나 반응하면 더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거라고 마음 속의 본능이 말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반응은 어떤 것이겠는가? 그 분을 영광되게 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않을까? 잘못된 일, 잘못된 가해자에 대해 말하고, 딸아이와 함께 적절히 분노함으로 아이를 위로하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딸아이와 차근히 말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다시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음에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논하는 것이지 않을까? 침묵에 맞서는 싸움에서 공명정대하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왜 말해?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텐데." 때로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기도 하다. 사실이다. 해외사역의 스트레스와 가족이 치러야 할 희생에 대해 이미 많은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때로 우리는 여전히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내 자신을 주님을 위해 바친다면, 주님은 주님의 몫을 일하시며, 내 가족을 돌봐주신다"고 마음 깊이 믿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소리다. 일은 이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사역이 그 분의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성령과 교회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듯 우리의 사역도 우리의 가족 안에서, 우리의 가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 아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즐거움과 존귀함을 경험할 때 그 얼굴에 나타나는 그 모습만큼 우리 하나님과 그 분의 사랑하시고자 하는 목적을 표현해 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이 그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중보하시고, 개입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을 들여 우리 아이들의 비밀스런 아픔과 근심에 반드시 귀기울여야 한다. 우리 딸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을 때 신뢰할 수 있고, 위로와 보호를 찾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딸들은 서로의 얘기에 귀기울여주는 것이 가족의 생명력이란 사실을 알고, 존경과 신뢰와 열린 마음의 바탕이 되는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아이이자 부모로서 이 글을 쓴다. 한 편에서는 내 자신을 구아바 나무에 올라가고, 연을 날리며, 맨발을 허공에 대고 흔들어대며, 배 위에 주사위를 올려놓고 너무나 즐겁게 노는 작은 소녀로 보고 있다. 또 주변 세계의 쉽지 않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당황해하는 10대의 청소년인 내 모습을 보고 있다. 눈을 내리깔고 시장을 걸어가는 혼란스러움을 본다. 골목길에서 친밀함의 표시치고는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휙 하고 스쳐 지나가는 남자나, 창가에서 무례하게 노래를 불러대고 의미심장한 미소와 눈길과 손길을 뻗치는 남자아이를 보기도 한다.
다른 쪽에서 나는 엄마 선교사이다. 나는 세 아이들을 이슬람 도시에서 키우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강건함과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기억한다. 그리도 많은 사역들과 선교의 책임과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한 가족으로 서로에게 깊이 묶여있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다른 통행금지가 발표되고,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정수 된 물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의 감정적, 영적 필요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도! 나는 한 짐의 빨래를 더 하기 위해, 또는 이메일을 하나 더 답장하기 위해 우리 꼬마 딸아이를 한 편의 비디오 앞으로 밀어 넣을 때의 죄책감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그 작은 손이 쉴 새 없이 내 옷자락을 잡아당길 때 하던 일을 멈추고 딸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아이가 "여기 보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좀 보세요. 보여요? 어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나는 선교단체들이 그들의 비전과 전략, 프로그램, 인사문제, 신뢰관계와 재정적인 위기 가운데서 잠깐 멈춰 시간을 들여 무릎을 꿇고 그들이 해외로 파송하는 어린 자녀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래, 알겠어. 네 이야기를 듣고 있단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진정으로 보살피는 것은 시간과 노력과 철저한 준비를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이 딸들의 삶에 미리 개입함으로 돕는 것이 예전 어느 때보다 지금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내가 자라는 동안 세계의 많은 이슬람 지역은 종교나 정치면에서 지금보다 더 실질적이었다. 나는 8년의 공백 후에 어른으로서 그 선교지로 돌아갔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이슬람관습의 변화에 놀랐다. 옷차림은 훨씬 더 보수적으로 변해 있었다. 라마단의 규율은 더 이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공립학교에서 아랍어와 이슬람의 신념을 가르치도록 명령되어 있었다.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보수주의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때에 기독교 선교단체들은 아직 복음이 미치지 않은 이슬람 사람들과 문화를 꿰뚫을 수 있는 합의된 노력들을 늘여가고 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선교사 가족들은 점점 엄격해지는 이슬람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상황에서 성희롱이나 학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문화에서 자라는 어린 소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상세하고도 명확히 초점이 맞춰진 조사가 있어야 한다. 우리 딸들을 이러한 문화에서 키우는 것에 대한 현명하고, 민감하며 신실한 전략들이 논의되고 부모나 다른 모양으로 우리 자녀들을 돌보는 이들에게 가르쳐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계속하여 이슬람 나라로 부르신다고 깊게 믿는다. 또한 우리가 그 부르심에 따를 때 우리는 어둠과 빛의 싸움, 거짓과 진리의 싸움에 나가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가 맞서 싸우는 거짓 중 하나는 우리 딸들에게 "너는 아무 가치가 없어. 내 마음대로 너를 다룰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러한 거짓과 단호하게 맞서고 그것을 드러내며, 우리의 빛나는 딸들을 어두운 곳에서 키우려는 우리의 의지는 우리가 섬기는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딸들이 빛의 자녀 된 자신을 깊이 알 수 있게 되기를!
Emily Van Dalen (번역: 이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