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_22_01_MK 사역의 꽃, MK 캠프
첫 캠프
초여름에 들어선 94년 5월 중순의 어느 날, 한국 아이들로 봐주기엔 너무 까만 것 같고, 빨리 지껄여대는 바람에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간간이 툭툭 내뱉으며, 자기 몸집 만한 트렁크들을 끄는 한 낯선 무리들이 목동 선교훈련원으로 몰려왔다. 1주일 동안 와서 캠프 서기 역할을 도와 달라는 부탁만 받지 않았어도 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텐데... 왠지 모를 부담감을 안고 첫 번째 캠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선교연구원(KRIM)에서 MK 교육을 위한 전임 연구원으로 홀로 일하시던 박순남 실장님이 발령 대기 중이던 인천교대 및 CCC 출신 교사선교회에 소속된 몇 분의 선생님들로 팀을 구성해서 해외 각 지역에서 온 20여명의 MK들과 2주간의 모국 초청 캠프를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그 전에도 간간이 현지에서 선교사 수련회 등과 같은 모임이 있을 때 E-랜드 산하의 ‘아시안미션(AM)’과 같은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교사 팀이 가서 며칠씩 MK들을 위한 캠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국캠프 형식의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무슨 캠프가 2주씩이나 한담? 4박 5일간의 수련회만 다녀와도 얼마나 진이 빠지는데...’ 1주만 돕기로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구경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외국에서 생활하고 주로 영어학교에 다니다보면 으레 한글 사용이 서툴고, 한국 교과나 한국 문화에 익숙지 못하기 마련인지 캠프의 오전 일과는 국어, 사회, 역사, 전통예절, 붓글씨 쓰기 등 한국 교과를 배우는 단기학교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어서 오후에는 남대문 시장, 민속 박물관, 청와대, 효자동 사랑방 등 한국의 풍속과 문화를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견학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2주째에는 경주, 안동 등의 문화 유적지를 함께 돌며 역사와 풍습을 배우는 모국 탐구여행이 이어졌다. 이렇게 2주간 한데 뒤엉켜 지내다 보니 아이들이고, 선생님이고 정이 무척 많이 들었나보다. 마지막 저녁, 촛불을 밝히며 모여 앉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눈망울이 다들 촉촉이 젖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도 괜시리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도 한국 아이들이구나. 이렇게 정에 약한 걸 보면...’
구경꾼에서 마당쇠(?)로
이것이 그토록 질긴 인연이 되어 해마다 땀 흘리며 MK들을 좇아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처음엔 빵, 우유 등의 아침 식사거리며, 캠프에 필요한 물품을 사다 나르는 스탶에서 시작하여, 이후엔 캠프 기획과 행정책임을 맡는 전담 간사로, 결국엔 심한 입덧과 싸우며 배불뚝이 아줌마가 된 이후에도 캠프에 미쳐 다니게 될 줄 그땐 정말 몰랐었다. 한번은 부족한 성경공부 교재를 구하기 위해서 캠프장이 있던 수원에서 서울까지 한 나절이 넘도록 모든 기독교 서점을 뒤지며 다닌 적도 있고, 30명이 넘는 캠프 팀이 무더위를 피해 한 자리에서 식사할 수 있는 시원한 장소를 찾기 위해 온 명동을 뒤지다가 결국 한산한 식당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던 일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9년을 달려오면서 어쩌면 MK 캠프를 통해 가장 많은 덕을 본 것은 MK들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MK 캠프에서 철들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MK NEST가 정식 사역기관으로 세워지고, 그동안 캠프를 기획하고 준비해 오시던 박순남 실장님이 현지에 선교사로 나가시게 된 97년 4회 캠프부터는 그 일이 내게로 떨어지게 되었다. 아직 행정업무에 익숙해지지도 않았는데, 2주씩이나 되는 캠프 프로그램을 어떻게 기획하고 준비한단 말인가? ‘주님, 사람을 잘못 세우신 것 아닌가요?’하고 내심 항의를 하며 한 주, 두 주 목을 조르듯 다가오는 시간 앞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때, 마침 GBT의 한 MK 간사님을 통하여 당시 불광동 한국기독교 수양관에서 관장으로 계시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캠핑사역을 하시던 최융 목사님과 연결이 되었다. MK NEST가 MK들의 교육 문제를 연구하며 선교사 가정을 돕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원부서이지만, 아무래도 10대 청소년인 MK을 대상으로 2주간의 캠프 사역을 이끌어가기엔 역부족이어서 청소년 및 캠프 전문가와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차였다.
‘알짜란’ MK 캠프 만들기
그렇게 시작된 4회 캠프부터는 MK 이해 및 필요와 관련된 영역은 MK NEST가 맡고, 구체적인 캠프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은 최융 목사님과 한국기독교 수양관의 몇몇 스탶들이 맡아 캠프교사 및 스탶으로 지원한 다수의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좀 더 실제적인 조직을 갖추어 캠프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주는 수련회, 둘째 주는 모국 탐구여행, 그리고 그 사이 주말엔 1박 2일 간의 홈스테이 프로그램이라는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면서도, 프로그램 내용면에서는 단순히 한국에 대해 배우며 MK들 상호간에 교제하던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나아가 TCK(Third Cultural Kids)로서 독특한 정체성을 살리고, 청소년으로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영역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기획하게 되었다.
그래서 매해마다 기획 단계에서 캠프 주제 인물을 선정할 때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TCK의 특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요셉, 모세, 다니엘, 느헤미야와 같이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 타 문화권에서 성장하면서도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은 인물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 있게 한다든지, 아브라함과 이삭, 여호수아 등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믿음으로 그 땅을 소유하는 선교사적인 삶을 산 인물들에 대한 주제를 정하여 캠프에 참가한 MK들이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도록 하였다.
MK 캠프는 일반 수련회와 달리 MK들의 독특한 필요를 채워주고 그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게 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캠프를 통해 다루어질 영역에 대한 깊은 연구와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은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MK들이 주로 고민하는 신앙적인 문제(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자기 정체성), 가족 관계, 친구 관계, 학교생활과 진로, 한국에 대한 이해와 뿌리의식, 자신이 살고 있는 현지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현실생활에서 부딪히는 가치관의 혼돈에 대한 바른 이해 등 청소년기에 주로 고민하는 영역들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성경 적인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캠프 커리큘럼을 미리 계획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한번에 이 모든 것을 심어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6년에 나누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몇 번에 걸쳐 캠프에 참가하더라도 다양한 주제와 내용들을 프로그램을 통해 골고루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MK들 뿐만이 아니라 부모 선교사들이 함께 참가하는 가족캠프와 각 선교지의 독특한 필요에 맞는 지역캠프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주제와 목표, 프로그램 등이 잘 짜여진다고 해서 성공적인 캠프가 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캠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헌신되고 잘 준비된 교사가 24시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캠프 현장에서 좋은 상담교사로서, 성경 적인 가치관을 비추어주는 모델로서 얼마나 그들과 역동적인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캠프 준비과정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교사 오리엔테이션이다. 여러 주에 걸친 교사 오리엔테이션을 통하여 MK들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캠프의 주제와 방향에 맞게 아이들과 적절히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준비가 잘 갖추어질 때 교사들이 그들의 내면 깊숙이 까지 다가가서 그들의 필요에 맞는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여름 황금 같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계속적으로 캠프를 섬기고 있는 몇몇 선생님들이야말로 보배와 같은 존재이다. 단 회 적인 경험으로는 MK 캠프를 다 이해하고 맛보기 어렵기 때문에 꾸준히 헌신하며 참여하는 교사들의 노하우야말로 캠프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됨을 해마다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은혜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 가는 동역
MK 캠프를 준비하는 일은 ‘총력전’이라 표현될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의 외부지원들이 필요하다. 한 선교부에서 캠프를 감당하기엔 인력 면으로나 재정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초 교파 선교단체에 소속된 여러 MK들을 모집대상으로 하다보니 각 선교부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 선교부들과 꾸준히 동역관계를 맺어 오면서 점차 참가하는 인원도 늘게 되었으며, 경우에 따라 재정적인 부담도 조금씩 나눌 수 있게 되었다. GMF에 소속된 파송부서(GBT, GMP, HOPE) 외에도, 고신총회 선교부, 침례교 해외 선교부, OMF, GP, 인터서브, 세계로 선교회 등 캠프 초기부터 선교부 차원에서 캠프를 홍보하고 소속된 자녀들을 참가하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를 실행하는 단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캠프를 위한 재정 모금은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이다. 참가자 개인이 부담하는 참가비로는 전체 예산의 절반 정도만 충당이 되기 때문에 나머지는 여러 교회에 협조 공문을 보내 지원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MK 사역에 대한 필요성을 이해하고 기꺼이 지원하려는 몇몇 교회들과 단체 및 개인들이 있었기에 해마다 풍성한 기적을 경험하는 놀라운 특권을 누릴 수 있어 감사를 드린다..
그밖에 1박 2일간의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위해 지원 가정을 모집하는 일도 여간 어렵지 않았다. 친한 손님을 대접하는 일도 신경이 쓰이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는데, 하물며 한국에 익숙지 않은 낯선 아이들을 집에 묵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막상 캠프가 시작되고 1주 프로그램이 끝나는 토요일 오전까지 민박가정이 다 채워지지 않아 스텝들이 애를 태우며 발을 동동 굴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기적은 매번 일어났다. 처음엔 낯선 가정에 가서 하루를 지내고 온다는 것이 MK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듯 마지못한 표정으로 따라 나섰지만, 다음 날 캠프장으로 다시 돌아올 땐 전 주의 피곤한 흔적은 사라지고 생생하게 회복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짧은 만남을 못내 아쉬워하며 혹시 부족한 것이 없었는지 염려하시는 초대해준 가정의 식구들을 보면서 이분들이야말로 나그네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자에게 주실 상을 그 날에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밖에도 열악한 캠프장 환경을 고려해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서 캠프장까지 매끼 날라다 주시는 여러 지역교회들도 있었고, 모국탐구 여행을 하는 동안 열 서너 명이 넘는 각 여행 팀들을 자신의 교회로, 안방으로 영접해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 주시는 분들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매번 이렇게 힘들게 2주씩이나 캠프를 해야 하나 하고 불평을 하다가도 정작 이런 분들의 섬김과 사랑을 통해 모국의 진한 정이 이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질 것을 생각하면, 또, 캠프라는 통로를 통해 한국교회가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 가정들의 필요를 더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만남의 장을 준비하는데 쓰임 받는 것 자체로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곤 한다.
캠프의 상급을 맛보며...
이런 것을 ‘들러리의 기쁨’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캠프에 참가하는 MK들은 이런 준비 과정과 상관없이 잘 차려져 있는 상을 맛있게 먹고 누리는 손님이요, 주인공이다. 이들이 다만 캠프를 마음껏 누리며 그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인지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다시 그 외롭고 힘든 현실의 생활에 부딪힐 때 회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박차고 일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역할은 훌륭히 수행한 셈이다. 성경에도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요2:9)”는 말씀이 있듯이 그 은혜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MK 캠프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상급이라고 믿는다.
9년 간의 캠프들을 돌아보면 특별히 떠오르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이들 또한 내게는 면류관에 달린 한 알 한 알의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먼저는, 94년 1회 캠프 때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는데 어느덧 국내 대학에 진학해서 캠프 교사로 섬기게 된 대학생 MK들이다. 그 중에는 캠프 때 하도 선생님들의 속을 썩여 유명해진 친구도 있는데,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과거 자신의 모습이 베어나는 후배 MK들을 뒤에서 땀 흘리며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도 된다. 누구보다도 후배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교사의 입장에서보다 그 길을 앞서 걸은 선배의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조언과 기도를 해 주기도 하고, 서로가 더 쉽게 마음이 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배들의 이런 모델을 봐서인지 올해는 캠프장을 떠나는 아이들 중에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꼭 스탶으로 와서 돕겠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든든한 미래의 동역자들을 벌써 확보한 셈인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선교지에서 힘든 경험을 하고 온 몇몇 친구들이다. 특히 일본과 같이 주위에 믿는 친구들이 적고, 이지매(왕따)가 심한 지역에서 외롭고 힘들게 학교생활을 하다가 캠프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맛볼 수 있었다던 사무엘. 사춘기에 여러 번 이동하며 학교를 옮겨 다니는 바람에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방황하다가 캠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서는 요셉과 같이 자신의 꿈을 갖고 일어서게 된 요셉이. 일찍 부모님과 떨어져 제 3국에서 외로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변에 있는 어려운 친구들과의 관계와 스스로 영적인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캠프에서 힘겹게 자신의 문제와 대면하며 싸우던 준이. 지금은 셋 다 미국 대학으로 진학해서 나름대로의 꿈을 힘있게 펼쳐나가고 있다. 가끔씩 여러 가지 고민들과 기도제목들을 알려오기도 하지만 난 이들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특별한 연단의 터널을 통과하여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로 아름답게 드려지는 꿈을 꾼다.
영적 전쟁터에 선 아이들
어떤 친구들 중에는 사춘기의 혼란을 극심하게 겪는 바람에 캠프에 와서도 적절하게 잡아주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물론 캠프가 모든 아이들에게 만병통치약과 같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보다 근본적으로 가정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를 먼저 치유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지나치게 내성적이거나 반대로 별 문제 없는 것처럼 쾌활하게 지내는 바람에 정작 상담이 필요한 문제를 교사들에게 꺼내놓지 못하고 그냥 묻어두고 지나쳐 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내면의 소리에 민감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지혜로운 교사의 역할이 캠프에서는 참 중요한 것 같다. 근사한 프로그램을 얼마나 매끄럽게 진행하는가보다는 성령께서 아이들의 마음을 말씀으로 어떻게 만지시는가에 따라 캠프에 대한 성공과 만족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캠프에서는 때로 영적 전쟁터와 같은 긴장감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많은 중보의 기도가 순간순간 요청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은 선교지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의 부모와 같이 이들도 선교사의 자녀로 동일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이 사실을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못하든지 선교사 자녀이기 때문에 겪는 갈등과 피해의식, 핍박과 혼란 등을 통해 그들도 동일하게 그 땅을 묶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때로 그것이 너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선교사 자녀란 사실이 부정적으로 느껴지게도 되지만, 이런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더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본다. 지금도 MK NEST에서는 캠프 때 만난 아이들 중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스탶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MK들을 마음에 품고 있는 교사들이 이 기도에 동참하며, 캠프 홈페이지(www.mkcamp.net)나 개인 이메일을 통해 이들을 격려하며 믿음의 용기를 북돋우고 있어서 감사 드린다.
꽃밭을 가꾸는 사람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섬김에 동참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이미 이 일에 가치를 발견하고 뛰어든 전문 선교기관 및 지역교회와 단체도 여러 군데가 된다. 합동 총회선교부인 GMS에서는 이미 95년도부터 소속된 선교사 자녀들을 대상으로 교단 차원으로 2주간의 캠프를 해마다 시행하여 알찬 결실들을 맺고 있으며,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소속 한국선교사자녀개발원(KOMKED)에서도 초교파 선교단체를 대상으로 2주간의 캠프를 진행하고 있어 교단 및 여러 선교회들이 함께 협력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그밖에 귀국 재외국민 자녀들을 위해 부산에 설립된 지구촌 고등학교(Glovill High School)에서도 2000년도부터 ‘글로빌 KEY 학습 캠프’를 1주간 개최하여 국내에 재 진입하는 자녀들에게 학습에 대한 도움과 성경 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캠프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MK 캠프의 전문성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각 기독교사 단체나 교사 선교회 등에서도 이미 여러 해부터 방학을 이용한 단기 사역 팀들이 현지와 연결하여 한글학교 및 MK 캠프를 감당하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지역교회에서도 단기 선교차원에서 MK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곳이 많아질 전망이어서 다양한 사역과 역할들이 기대된다. 그래서 이번 저널에서는 이러한 캠프에 참여한 분들의 이야기들을 여러 편 실어보았는데,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도전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한다. MK 캠프가 단지 전문 선교기관만의 사역이 아니라 앞으로 지역교회와, 기독교사 모임이 주체가 되어 더 풍성하고도 전문성 있는 사역으로 확산되어질 날을 기대한다.
MK 캠프는 그야말로 MK 사역의 꽃이다. 그 다양한 빛깔의 꽃들이 저마다 활짝 피어나 그 속에 아름다운 열매를 잉태하게 될 때 그 전에 보지 못했던 한국선교의 결실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MK 캠프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래서 그 많은 고생을 치루고 나서도 캠프 철이 다가오면 다시 그 모험의 세계로 겁없이 뛰어들게 된다. 마치 해산한 여인이 그 모든 고통과 수고를 잊고 또 다시 생명을 잉태하듯이 말이다.
내년 MK 캠프엔 젖먹이를 등에 업고 캠프장을 뛰어다니는 한 아줌마를 보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바로 나일 것이다.